경제상식

물가는 어떻게 잴까 — 소비자물가지수(CPI) 기초

마트에서 장 보고 나오면서 영수증을 보고 "어? 또 올랐네" 한 적, 다들 있죠. 그런데 며칠 뒤 뉴스에선 "지난달 물가 상승률 2.9%"라고 점잖게 말해요. 내 체감은 분명 5%, 10%는 오른 것 같은데 말이죠.

그 2.9%라는 숫자, 대체 누가 어떻게 잰 걸까요? 오늘은 그 비밀을 풀어볼게요.

결론부터 한 줄로 말하면, 물가는 "온 국민이 자주 사는 대표 품목들을 한 바구니에 담아, 그 바구니 값이 작년보다 얼마나 변했나"를 잰 숫자예요. 이 숫자가 바로 소비자물가지수, 영어로 CPI(Consumer Price Index)예요.

거대한 '국민 장바구니'를 하나 상상해 보세요

물가를 잰다는 게 모든 가게의 모든 물건값을 다 더하는 건 아니에요. 세상엔 물건이 수십만 가지인데 그걸 다 셀 순 없잖아요.

그래서 통계청은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사고 많이 쓰는 것들을 골라요. 쌀, 달걀, 라면, 휘발유, 전기요금, 미용실 비용, 학원비, 휴대폰 요금… 이런 식으로 약 460개 품목을 뽑아 하나의 '대표 장바구니'를 만들어요.

쌀·달걀·휘발유·전기요금·통신비 등 대표 품목 약 460개를 하나의 큰 장바구니에 담고, 그 바구니 전체 값이 작년 대비 얼마나 올랐는지를 재는 것이 소비자물가지수(CPI)라는 것을 보여주는 도해

그리고 이 바구니의 값을 매달 재요. 전국 곳곳의 가게와 시장을 직접 돌며 가격을 조사하죠. 작년 이맘때 이 바구니가 10만 원이었는데 올해 같은 바구니가 10만 2,900원이 됐다면, "물가가 2.9% 올랐다"가 되는 거예요.

기준이 되는 어떤 해의 바구니 값을 100으로 딱 정해두고, 그 뒤로 값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숫자로 표시해요. 그래서 '지수(index)'라고 부르는 거고요. 지수가 100에서 103이 됐다면 그동안 물가가 3% 올랐다는 뜻이죠.

똑같이 1만 원 올라도, 라면값과 우표값은 무게가 달라요

여기서 짚고 갈 게 하나 있어요. 바구니에 담긴 460개 품목이 전부 똑같은 비중은 아니라는 거예요.

생각해 보면 당연하죠. 우리가 한 달에 쓰는 돈에서 월세나 외식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만, 우표 살 일은 거의 없잖아요. 그러니 월셋값이 5% 오르는 거랑 우푯값이 5% 오르는 건 우리 지갑에 주는 충격이 완전히 달라요.

그래서 품목마다 가중치라는 걸 매겨요. 사람들이 돈을 많이 쓰는 품목일수록 무게를 무겁게 두는 거예요. 예를 들어 전셋값이나 통신비, 외식비처럼 지출 비중이 큰 항목은 물가지수를 움직이는 힘이 세고, 어쩌다 한 번 사는 물건은 아무리 값이 뛰어도 전체 지수엔 살짝만 영향을 줘요.

장바구니 안에서 월세·통신비·외식비처럼 지출 비중이 큰 품목은 큰 칸을, 우표처럼 가끔 사는 품목은 작은 칸을 차지해, 같은 비율로 올라도 전체 물가에 주는 영향(가중치)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도해

뉴스에서 "기름값이 물가를 끌어올렸다"는 말이 자주 나오는 것도 이 가중치 때문이에요. 기름은 가중치가 꽤 큰 데다, 운송비를 타고 다른 물건값까지 줄줄이 올리거든요.

'근원물가'는 또 뭐예요? — 출렁이는 것들을 잠깐 빼본 값

뉴스를 보다 보면 그냥 물가 말고 '근원물가' 또는 '근원 인플레이션'이라는 말도 나와요. 이게 좀 헷갈리죠.

근원물가는 쉽게 말해 유난히 출렁이는 품목을 잠깐 빼고 본 물가예요. 대표적으로 빠지는 게 농산물과 석유류고요.

왜 빼냐고요? 이 둘은 날씨나 국제 정세 같은, 우리 경제의 진짜 체력과는 상관없는 이유로 마구 튀거든요. 장마가 길면 배춧값이 두 배가 되고, 중동에서 무슨 일이 터지면 기름값이 출렁이죠. 이런 일시적 충격까지 다 섞으면 물가의 진짜 흐름이 잘 안 보여요.

그래서 한국은행 같은 곳은 정책을 정할 때 이 근원물가를 같이 봐요. 출렁이는 거품을 걷어내고 물가의 밑바닥 추세를 읽으려는 거죠. 중앙은행이 무슨 일을 하는지 들여다보면, 이 근원물가가 왜 그렇게 중요한 지표인지 더 잘 와닿을 거예요.

그래서 왜 내 체감은 항상 더 비싼 걸까

자, 이제 처음의 그 의문으로 돌아와 봐요. 뉴스는 2.9%라는데 내 체감은 왜 그보다 훨씬 높을까요? 이건 당신 착각이 아니에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거든요.

첫째, 우리는 자주 사는 것의 가격에 민감해요. 매주 사는 달걀이나 매일 넣는 기름값이 오르면 강하게 느끼죠. 반대로 1년에 한 번 살까 말까 한 가전제품이 내려도 잘 체감을 못 해요. 그런데 지수는 이 둘을 다 섞어서 평균을 내거든요.

둘째, 사람마다 장바구니가 달라요. 통계의 바구니는 '평균적인 국민'의 것이에요. 하지만 자취생, 4인 가족, 자가용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장바구니는 전부 다르죠. 차가 없으면 기름값이 내려도 별 감흥이 없고, 외식을 많이 하는 사람은 외식비 상승을 더 아프게 느껴요.

셋째, 오른 건 오래 기억하고 내린 건 금방 잊어요. 사람 마음이 원래 그래요. 1,000원 오른 건 두고두고 억울한데, 슬그머니 내린 건 알아채지도 못하죠.

그러니까 체감물가와 지표물가가 차이 나는 건 통계가 거짓말을 해서가 아니라, '전체 평균'과 '내 사정'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둘 다 맞는 거예요. 이걸 알고 나면 물가 뉴스를 봐도 덜 답답하실 거예요.

자주 묻는 질문

Q. 물가지수가 마이너스면 좋은 거 아닌가요? 물건이 싸진 거잖아요.

A. 잠깐은 반가울 수 있지만, 물가가 계속 떨어지는 건 보통 나쁜 신호예요. 사람들이 "더 기다리면 더 싸지겠지" 하며 지갑을 닫고, 그러면 기업이 안 팔려서 월급을 줄이고, 그럼 더 안 사는… 악순환이 생기거든요. 이걸 디플레이션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많은 나라가 물가를 0%가 아니라 2%쯤 '적당히' 오르게 관리해요.

Q. 그럼 정부가 물가지수를 일부러 낮게 발표할 수도 있나요?

A. 품목과 가중치, 조사 방법이 다 공개돼 있고 국제 기준에 맞춰 만들어서, 마음대로 주무르긴 어려워요. 다만 어떤 품목을 넣고 빼느냐, 가중치를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 숫자가 조금씩 달라질 수는 있어요. 그래서 지수 하나만 보지 말고 근원물가나 생활물가 같은 여러 지표를 같이 보는 게 좋아요.

Q. 장바구니 품목은 한 번 정하면 계속 똑같나요?

A. 아니에요. 시대가 바뀌면 사람들이 사는 것도 바뀌잖아요. 예전엔 없던 배달앱 수수료나 스트리밍 구독료가 새로 들어오고, 안 쓰는 물건은 빠져요. 보통 5년마다 한 번씩 바구니 구성을 손봐서 현실에 맞춰요.

마무리하며

물가지수, 알고 보면 별거 아니죠. 온 국민의 대표 장바구니 값이 작년보다 얼마나 변했나, 딱 이거예요. 거기에 자주 쓰는 것엔 무게를 더 주고(가중치), 너무 출렁이는 건 잠깐 빼서 흐름을 보고(근원물가), 그래도 내 체감과는 좀 다를 수 있다(평균의 한계)는 것까지 알면 충분해요.

이제 물가 뉴스가 나와도 "아, 저 바구니 얘기구나" 하고 한 발 떨어져 볼 수 있을 거예요. 다음엔 이 물가와 늘 짝꿍처럼 붙어 다니는 '경기'가 왜 좋아졌다 나빠졌다 하는지, 경기순환 이야기로 찾아올게요.

참, 애초에 '돈의 값어치'가 변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더 근본부터 궁금하다면 돈이 어떻게 돈이 됐는지부터 보고 와도 좋아요.